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의 다리 (문단 편집) === [[6.25 전쟁]] 전후 === 자유의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[[경의선]] 철교가 상행과 하행 2개가 있었는데, [[6.25 전쟁]]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다리 기둥만 남게 되었다.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서쪽 교각 위에 철교를 복구했고 그 남쪽 끝에 임시 교량을 가설했는데, '''이 임시로 가설된 교량이 바로 자유의 다리이다.''' 휴전협정 이전에는 노상리 쪽 마을명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불렸는데, 이후 북쪽에 잡혀 있던 공산군의 포로 중 12,773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. 당시 포로들은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온 뒤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. 이후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판문점 회담을 위한 경로로서의 필요성 때문에 임진강철교의 서쪽 교각을 일방통행 도로교로 이용하면서 이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로 이용되었다.[* 당초 문서에서는 전쟁직후 철거되었다고 나오는데, [youtube(LvO_9XTGnMs,width=300,height=200)]에 보면 1970년대에 자유의 다리가 유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